시대 / 서기 1914~2024년
현대 세계
갈등과 공동의 미래
교통은 도시 리듬을 바꾸고 기술은 먼 곳을 연결하며 일상은 세계와 점점 더 얽힌다.

선정 사건
기록된 연·월·일 순으로 정렬합니다. 같은 해에 날짜 정밀도가 부족한 사건은 뒤에 놓고 장기 과정은 시작점에 배치합니다.
멕시코 혁명과 1917년 헌법
장기 통치에 반대한 혁명은 토지, 노동, 국가권력 투쟁과 얽혔고, 1917년 헌법은 제도 재건의 중요한 단계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 지구적 동원
유럽의 위기는 식민지 병사, 노동자, 자원을 끌어들인 세계대전으로 확대되어 제국과 일상을 재편했다.
아일랜드의 영국 통치에 도전한 부활절 봉기
공화주의 봉기 세력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하여 민족주의와 무장저항을 연결했지만 그 목표·방식을 모두가 공유하지는 않았다.
러시아 혁명과 소련의 형성
두 혁명은 차르 지배를 끝내고 볼셰비키를 집권시켰다. 이후 내전과 국가 재편을 거쳐 1922년 소련이 수립되었다.
5·4운동과 신문화 논쟁
파리강화회의의 산둥 권익 처리는 베이징 학생 시위를 촉발했고 더 넓은 사회운동으로 번져 신문화, 민족주의, 새 정치사상과 얽혔다.
중국공산당 창당
중국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는 상하이에서 개막한 뒤 자싱으로 옮겨, 초기 공산주의 조직을 통일된 정당으로 모았다.
9·18사변과 일본의 중국 동북부 점령
일본 관동군은 철도 폭발을 구실로 선양을 공격한 뒤 중국 동북부 점령을 확대했다. 이는 중국 대일 저항의 중요한 시작이자 동아시아 전쟁 확대의 계기였다.
전면 대일 항전과 전쟁 속 민간인
루거우차오 사건 후 중일전쟁은 전면전이 되었다. 군민의 저항, 도시 기능의 이전, 심각한 전시 잔학행위가 중국 사회를 깊이 바꾸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전 지구적 참사
유럽 전쟁은 아시아의 기존 침략전쟁과 합류하여 세계 여러 지역을 총력전, 점령, 집단학살에 끌어들이고 전후 국제 권력을 재편했다.
유엔과 전후 국제질서
제2차 세계대전 마지막 단계에 각국은 유엔헌장에 서명하며 공동 제도를 통한 평화 유지와 국제협력을 추구했다.
인도네시아 독립선언과 반식민 전쟁
수카르노와 하타가 독립을 선언한 뒤 네덜란드와 전쟁·교섭이 이어졌다. 1949년 주권 이양과 1945년 독립선언은 다른 이정표였다.
대일 승전과 중국 전구에서의 일본군 항복
일본은 항복문서에 서명했고 중국 전구 일본군의 항복식은 난징에서 열렸다. 대일전쟁이 끝난 뒤 평화와 재건은 곧 국공내전으로 흔들렸다.
일본의 전후 헌법과 제도 재건
패전 뒤 일본은 점령하에 제도를 재건했다. 1947년 새 헌법이 시행되어 국민주권, 기본권, 전쟁 포기 원칙을 세웠다.
남아시아의 독립과 분할
영국 식민 통치가 끝나고 인도·파키스탄이 독립했다. 분할은 대규모 이주, 폭력, 지속적인 분쟁도 낳았다.
이스라엘 수립과 팔레스타인인의 재앙에 대한 기억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고 전쟁이 확대되었다. 수많은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에서 쫓겨난 경험은 나크바에 관한 역사적 기억의 중심이 되었다.
세계인권선언
전후 국제사회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포함하여 존엄·권리의 공통 기준을 명시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949년 10월 1일 베이징에서 건국식이 열려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 수립을 선포했다.
인도 공화국과 헌법의 시행
독립 후 인도는 헌법 제정으로 공화국의 제도 틀을 세워 국가 조직, 기본권, 성인 시민의 투표권을 헌법에 담았다.
한국전쟁과 휴전 뒤 한반도 분단
한반도 전쟁은 유엔군, 중국인민지원군, 다른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다. 1953년 휴전은 주요 전투를 멈췄지만 평화조약의 체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유럽공동체: 석탄·철강 협력에서 EU로
여섯 나라는 석탄·철강 생산을 공동 기구 아래 두고 경제·정치 협력을 점차 넓혔다. 유럽연합은 1993년 정식 수립되었다.
이집트 7월 혁명과 공화국 수립
자유장교단은 권력을 장악하고 왕을 퇴위시켰다. 이후 이집트는 군주제를 폐지하여 반식민 행동과 국가 개혁의 새 단계를 열었다.
반둥: 함께 목소리를 낸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 대표가 반둥에서 반식민주의, 주권, 협력을 논의하며 세계 문제에 참여하려는 신생 독립국의 열망을 표현했다.
이집트의 수에즈운하회사 국유화
나세르는 이집트 주권·아랍 민족주의를 운하회사 통제와 연결했다. 7월 결정과 그해 후반 영국·프랑스·이스라엘 군사행동은 다른 단계였다.
가나 독립과 아프리카 통합의 호소
가나는 영국 식민 통치에서 독립했고 은크루마는 국가 독립을 아프리카 통합이라는 정치 목표와 연결했다.
쿠바 혁명: 바티스타 지배의 종식
혁명군이 진격하자 바티스타가 쿠바를 떠났고 새 정부가 세워져 카리브해의 정치 지형을 바꾸었다.
아프리카 독립의 물결과 자결 원칙
많은 아프리카 국가가 유럽 식민 지배에서 독립해 유엔 구성을 바꾸었다. 독립 후 국가 건설도 국경, 자원, 냉전의 압력에 직면했다.
알제리 독립과 식민 전쟁의 종결
수년간의 전쟁과 교섭은 알제리 독립으로 이어졌다. 탈식민화는 북아프리카를 재편했지만 이주, 폭력, 기억의 과제를 남겼다.
미국 민권법: 인종격리와 고용차별에 도전하다
지속적 민권운동은 공공장소·고용 등의 차별을 금지한 연방법 성립을 이끌어 평등권의 법적 보호를 넓혔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민투표와 원주민의 헌법적 지위
오랜 권리운동은 헌법 국민투표를 이끌어 인구 집계에서 원주민을 배제하던 규정을 없애고 원주민 문제에 관한 연방 입법권을 확대했다.
아세안 창설과 동남아시아 지역 협력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은 방콕에서 선언에 서명해 지역 협력을 촉진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세웠다.
아폴로 11호와 최초의 유인 달 착륙
아폴로 11호는 최초 유인 달 착륙을 달성했고 텔레비전은 세계인이 우주 탐사의 새 단계를 함께 목격하게 했다.
아파넷: 인터넷 전신의 첫 메시지
캘리포니아 연구자들이 최초의 아파넷 메시지를 보냈다. 패킷 교환과 기관 간 연결 실험은 후대 인터넷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
피지 독립과 태평양의 국가 형성
피지는 독립국이 되었으며 원주민·이주민 공동체는 식민 지배가 형성한 제도에 직면했다.
유엔 대표권 변경과 미중 접근
유엔총회는 중국 대표권에 관한 결정을 바꾸었고 중화인민공화국 대표들이 유엔에 들어왔다. 닉슨 방문과 상하이 코뮈니케는 미중관계를 대립에서 접근으로 이끌었다.
크메르 루주 지배와 캄보디아의 사회적 참사
크메르 루주는 강제이주·노동·정치 박해로 사회를 바꾸었고 굶주림, 질병, 처형이 참사를 낳았다. 1979년 프놈펜을 잃은 뒤에도 분쟁은 계속되었다.
사이공의 지배 교체와 베트남전쟁 종결
북베트남과 남부 동맹군이 사이공에 들어가 남베트남 정부가 항복하며 긴 전쟁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이듬해 국가의 제도적 통일은 그날 군사 결과와 구별해야 한다.
뉴질랜드 와이탕이 심판소: 조약 청구의 공적 절차
와이탕이조약법은 정부가 조약을 위반했다는 마오리의 청구를 조사할 심판소를 세워 식민 유산을 지속적 조사·교섭 과정에 넣었다.
개혁개방과 경제체제의 변화
중국공산당 제11기 3중전회는 중요한 정책 전환이었다. 농촌개혁, 경제특구, 점진적 시장화는 생산, 인구 이동, 국제 연결을 바꾸었다.
이란 혁명과 이슬람공화국 수립
전국적 시위·파업은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렸고 호메이니의 새 정부가 이슬람공화국을 세워 사회·국제관계를 바꾸었다.
베를린 장벽 개방과 냉전 질서의 전환
동독 시위와 정치 위기는 국경 개방으로 이어졌고 베를린 장벽은 통행을 막는 기능을 잃어 독일·유럽 냉전 구도의 빠른 변화를 열었다.
소련 해체와 냉전 질서의 전환
연방 중앙정부는 공화국들을 결속할 능력을 잃었고 소련은 1991년 말 소멸하여 많은 유라시아 국가가 새 국가 건설 단계에 들어갔다.
르완다의 투치족 집단학살
극단주의 세력은 투치족 민간인 살해를 조직하고 학살에 반대한 후투족 등도 살해하여 국제 보호체계의 심각한 실패를 드러냈다.
남아프리카, 인종 구분 없이 첫 전국 선거를 치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오랜 투쟁과 협상은 모두에게 열린 선거로 이어졌다. 이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며 남아프리카는 새 민주주의 단계에 들어갔다.
홍콩 반환과 특별행정구 수립
중국은 홍콩 주권 행사를 회복했고 홍콩특별행정구가 세워지며 기본법이 발효하여 일국양제 아래 제도·자치 틀을 정했다.
마카오 반환과 특별행정구 수립
중국은 마카오 주권 행사를 회복했고 마카오특별행정구가 수립되어 포르투갈 행정이 끝나고 새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
오랜 협상 끝에 중국은 WTO의 143번째 회원이 되어 다자 무역규칙과 세계 생산망에 더 깊이 통합되었다.
아프리카연합 출범과 대륙 협력
아프리카연합은 더반에서 정식 출범하여 아프리카통일기구의 활동을 잇고 지역 협력, 개발, 평화·안보를 새 제도 틀에 담았다.
선저우 5호: 중국 최초 유인우주비행
양리웨이가 선저우 5호로 지구 궤도에 진입한 뒤 무사 귀환하여 중국 최초 유인우주임무를 완수하고 새 단계를 열었다.
세계 금융위기와 국경을 넘는 위험
미국 주택·신용시장 위험은 세계 금융망으로 퍼졌고 2008년 위기가 심화되어 실업, 신용 경색, 느린 회복으로 사회생활을 바꾸었다.
베이징의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
베이징은 처음으로 하계올림픽을 개최했다. 세계 선수·관중이 참여하며 스포츠, 도시개발, 국제교류가 한 무대에서 만났다.
파리협정과 세계 기후협력
파리 기후회의는 당사국이 국가결정기여 등의 체계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협정을 채택했다. 합의 도달과 실행은 여전히 다른 단계다.
우한 발병 보고와 세계 보건 경보
우한에서 원인 불명 폐렴이 나타나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인되었다. 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세계는 새 유행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세계 공중보건 대응
WHO는 코로나19를 대유행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각국 보건 대응은 사회·경제생활과 긴밀히 연결되어 국경 간 협력과 자원 격차를 함께 드러냈다.
창어 6호, 최초의 달 뒷면 시료 귀환
창어 6호 귀환선은 달 뒷면 시료를 싣고 안전하게 착륙했다. 인류 최초 달 뒷면 시료 귀환으로 앞면·뒷면 비교를 위한 새 실물 자료를 제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