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50~1953년 / 동아시아

한국전쟁과 휴전 뒤 한반도 분단

한반도 전쟁은 유엔군, 중국인민지원군, 다른 외부 세력을 끌어들였다. 1953년 휴전은 주요 전투를 멈췄지만 평화조약의 체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1950년 12월 흥남에서 철수하는 난민
역사 기록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보존한 1950년 12월 19일 흥남 철수 중 선박에 몰린 난민의 미국 정부 사진. 한국전쟁이 낳은 민간인 피란을 기록한다.US Department of the Navy, Naval Photographic Center (photographer unidentified)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U.S. federal government work) 이미지 출처와 이용 조건

이야기

일본 식민 통치가 끝난 뒤 한반도는 점령 구역으로 나뉘었고 1948년 남북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인민군은 38선을 넘어 남한을 공격했고 전쟁은 빠르게 확대되었다. 주로 미국이 이끈 유엔군이 참전했고 중국인민지원군이 뒤이어 들어왔으며 소련도 지원했다. 반복된 전투와 폭격은 민간인의 심각한 손실, 이주, 가족 이산을 낳았다. 1953년 7월 27일 유엔군·조선인민군·중국인민지원군 대표들은 휴전협정에 서명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서명하지 않았다. 휴전은 평화조약으로 분단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지도는 판문점 휴전 장소를 표시한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한국전쟁은 동아시아 냉전의 군사 대립을 심화하고 일본의 전후 경제·안보 환경을 바꾸었다. 한반도 주민의 경험을 강대국 대립만으로 요약할 수는 없다.

날짜와 연대 정밀도

서기 1950~1953년 장기 과정

날짜는 시간에 걸쳐 진행된 과정을 설명하며 대화형 연표는 그 시작점을 사용합니다.

대표 장소

대표 좌표 · 37.956°, 126.677°

좌표는 이야기의 대표 장소를 표시합니다. 모든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뜻도 역사적 경계를 나타낸다는 뜻도 아닙니다.

참고문헌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 1953년 한국 휴전협정
  • 미국 국무부 역사실 | 한국전쟁과 동아시아 전후 체제
  • 국가기록원 | 1953년 휴전협상과 서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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