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975년 4월~1979년 1월 / 남아시아·동남아시아

크메르 루주 지배와 캄보디아의 사회적 참사

크메르 루주는 강제이주·노동·정치 박해로 사회를 바꾸었고 굶주림, 질병, 처형이 참사를 낳았다. 1979년 프놈펜을 잃은 뒤에도 분쟁은 계속되었다.

초에웅엑 박물관에 전시된 검은 옷과 체크무늬 스카프
현재 모습2009년 8월 초에웅엑에서 촬영한 크메르 루주 관련 의복 전시. 후대 전시이지 정권 당시 사진이나 누가 옷을 입었는지에 대한 증거가 아니다.Toony (Wikimedia username) · Wikimedia Commons ·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ShareAlike 3.0 이미지 출처와 이용 조건

이야기

1975년 4월 17일 크메르 루주는 프놈펜에 진입해 주민을 강제 퇴거시켰다. 이후 강제노동, 엄격한 통제, 대규모 박해를 가했다. 사람들은 처형, 기아, 질병, 가혹한 노동조건으로 죽었고 베트남계·참족 공동체는 표적 집단학살을 당했다. 1979년 1월 베트남군과 캄보디아 반크메르 루주군이 프놈펜에 진입해 중앙 정권은 무너졌지만 잔존세력은 활동했고 전쟁이 그날 끝나지는 않았다. 후에 캄보디아 특별재판부가 관련 범죄를 심판했다. 지도는 희생자 기억의 대표 장소로 프놈펜 옛 S-21 수용소 부근을 표시한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는

동남아시아 전쟁과 냉전은 정권 부상의 설명에 도움이 되지만 박해·강제노동 정책 자체도 기록해야 한다. 피해 경험을 국제 경쟁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날짜와 연대 정밀도

서기 1975년 4월~1979년 1월 장기 과정

날짜는 시간에 걸쳐 진행된 과정을 설명하며 대화형 연표는 그 시작점을 사용합니다.

대표 장소

대표 좌표 · 11.549°, 104.917°

좌표는 이야기의 대표 장소를 표시합니다. 모든 일이 그곳에서 일어났다는 뜻도 역사적 경계를 나타낸다는 뜻도 아닙니다.

참고문헌

  • 캄보디아 특별재판부 ECCC | 민주 캄푸치아 정권의 역사적 배경
  • 캄보디아 특별재판부 ECCC | 재판 범위와 법정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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