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 세계사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여섯 시대에 걸친 남아시아·동남아시아 선정 사건 22개를 날짜, 전체 이야기, 대표 장소, 참고문헌과 함께 탐색하세요.

기원전 3500~801년
초기 문명
기원전 800년~서기 499년
고전 세계
아소카와 돌에 새긴 통치의 이상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는 칙령으로 도덕적 통치의 이념을 전하고 불교 활동을 후원하여 지역을 넘는 종교 교류를 촉진했다.
아잔타: 암벽의 불교 미술
석굴, 회화, 조각은 여러 단계에 걸쳐 조성된 경관에서 예배, 거주, 이야기 전달을 결합했다.
산치: 스투파와 승원 공간
석주, 스투파, 승원은 불교 예배와 공동체 생활을 위한 지속적인 공간을 이루었다.
간다라 불교와 아시아 전역으로의 전파
간다라의 사원과 스투파는 상인 공동체의 후원을 받았다. 불교 이미지는 여러 미술 전통을 결합하여 교통망을 따라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전해졌다.
날란다: 승원 제도 안의 지식
주거·교육 건물은 수세기의 조직적 학습을 뒷받침하며 아시아의 다른 불교 기관에 영향을 주었다.
시기리야: 바위 위의 수도
스리랑카 통치자는 가파른 바위와 기념비적 접근로로 눈에 띄는 왕실 중심지를 만들었다.
서기 500~1399년
서로 얽힌 세계
아잔타: 암벽의 불교 미술
석굴, 회화, 조각은 여러 단계에 걸쳐 조성된 경관에서 예배, 거주, 이야기 전달을 결합했다.
날란다: 승원 제도 안의 지식
주거·교육 건물은 수세기의 조직적 학습을 뒷받침하며 아시아의 다른 불교 기관에 영향을 주었다.
보로부두르: 자바의 불교 기념물
사각 단구, 원형 단, 스투파는 자바에서 불교 사상에 독특한 건축 형태를 부여했다.
앙코르의 신전과 물을 기반으로 한 도시 경관
크메르 통치자들은 앙코르 지역에 수도와 신전을 건설하고 물 관리 체계를 마련하여 농업 생산, 왕권, 종교적 경관을 연결했다.
바간: 강 평야에 펼쳐진 사원들
에야와디강 옆 왕실 중심지는 사원, 스투파, 그림, 조각으로 가득한 넓은 경관을 남겼다.
서기 1400~1749년
세계적 만남
앙코르의 신전과 물을 기반으로 한 도시 경관
크메르 통치자들은 앙코르 지역에 수도와 신전을 건설하고 물 관리 체계를 마련하여 농업 생산, 왕권, 종교적 경관을 연결했다.
다 가마의 인도 도착과 해상 식민 팽창
포르투갈 함대는 아프리카를 돌아 캘리컷에 도착하여 기존 인도양 교역 세계에 진입했다. 후속 항해는 점차 무장 거점과 얽혔다.
무굴 왕조와 남아시아의 재편
바부르의 승리로 무굴 왕조가 시작되었고 후계 통치자들은 정복, 동맹, 행정 통합으로 남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재편했다.
마닐라 갤리온과 태평양을 건넌 은
필리핀과 멕시코를 잇는 항로는 비단·도자기 같은 아시아 상품을 아메리카의 은과 연결하여 태평양을 넘는 지속적 교류를 촉진했다.
타지마할: 궁정의 후원과 추모
아그라 대리석 영묘는 왕실 추모와 무굴 궁정의 미술 전통을 결합했다.
서기 1750~1913년
혁명의 시대
서기 1914~2024년
현대 세계
인도네시아 독립선언과 반식민 전쟁
수카르노와 하타가 독립을 선언한 뒤 네덜란드와 전쟁·교섭이 이어졌다. 1949년 주권 이양과 1945년 독립선언은 다른 이정표였다.
남아시아의 독립과 분할
영국 식민 통치가 끝나고 인도·파키스탄이 독립했다. 분할은 대규모 이주, 폭력, 지속적인 분쟁도 낳았다.
인도 공화국과 헌법의 시행
독립 후 인도는 헌법 제정으로 공화국의 제도 틀을 세워 국가 조직, 기본권, 성인 시민의 투표권을 헌법에 담았다.
반둥: 함께 목소리를 낸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 대표가 반둥에서 반식민주의, 주권, 협력을 논의하며 세계 문제에 참여하려는 신생 독립국의 열망을 표현했다.
아세안 창설과 동남아시아 지역 협력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은 방콕에서 선언에 서명해 지역 협력을 촉진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세웠다.
크메르 루주 지배와 캄보디아의 사회적 참사
크메르 루주는 강제이주·노동·정치 박해로 사회를 바꾸었고 굶주림, 질병, 처형이 참사를 낳았다. 1979년 프놈펜을 잃은 뒤에도 분쟁은 계속되었다.
사이공의 지배 교체와 베트남전쟁 종결
북베트남과 남부 동맹군이 사이공에 들어가 남베트남 정부가 항복하며 긴 전쟁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이듬해 국가의 제도적 통일은 그날 군사 결과와 구별해야 한다.